2020년 회고록
또 다시 새 블로그. 이번에는 잘할 거야.
제 블로깅의 역사는 중학교 때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친구들이랑 같이 네이버 블로그를 했었죠. 주로 게임이나 애니메이션 리뷰를 했었는데, 당시에 AAA급 게임 프랜차이즈가 쏟아져 나올 때여서 글 쓸 건 정말 많았고, 중학생이 딱히 할 게 뭐가 있었겠습니까. 그 때는 정말 하루종일 블로그 글감을 찾고, 블로그 스킨을 만들고, 댓글에 답글 달고 했던 것 같습니다. 작년에 잠시 네이버 블로그를 하면서 과거의 친구들 블로그를 가보았는데, 블로그를 지금까지 계속하는 친구는 한 명밖에 남지 않았더군요.
대부분의 제 친구들이 그러했듯, 저도 나이를 먹어가면서 다른 재미있는 취미들이 생기면서 블로그와 멀어져갔습니다. 떠오른 글감이나 생각은 트위터나 페이스북에 곧바로 토해내듯 쓸 수 있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가끔씩 장문의 글을 읽고 쓰는 능력이 서서히 퇴보해가고 있다는 두려움이 오면, 블로그 플랫폼 중에 아직 써보지 않은 마음에 드는 플랫폼을 골라서, 블로그를 꾸며 글을 한편 쓰고는 다람쥐 마냥 잊어버리곤 했습니다.
안타깝게도, 도토리를 묻으면 도토리 나무가 자라 종국에는 자신에게 도움이 되게 하는 다람쥐와 달리, 제 블로그에서 글 나무는 자라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에도 또 블로그를 만들었습니다. 별 다른 이유는 아니고, 서버가 한 대 놀고 있는데, 그게 너무 억울해서 블로그를 얹어보았습니다. Jekyll이나 Hugo를 고민했지만, 너무 강력한 커스터마이징 기능을 가지고 있어서 블로그 꾸미는 데 모든 힘을 쏟다가 글을 못 쓰고 또 하루살이 블로그로 전락해 버릴 것 같기도 하고, 전에 Jekyll 기반 블로그를 했을 때 Markdown으로 써서 퍼블리싱을 하는 과정이 너무 번거로워 글을 쓰지 않게 되는 것 같기도 해서 온라인으로 바로 글을 쓸 수 있고, 적당히 테마를 가져다 쓰면 예쁜 Ghost를 설치했습니다. 매번 새 블로그를 만들 때마다 하는 다짐이지만, 이번에는 잘 할겁니다. 아마도.
2020년 리뷰 - 잃어버린 20년
2020년은 모두가 COVID-19로 고생한 한 해였습니다. 당연하게 여기던 것들의 가치는 그것이 더이상 당연해지지 않을 때 알게 된다는 말을 뼈져리게 느끼게 해 준 한 해 였습니다. 원래부터 대부분의 식사를 배달의 민족에 외주를 주고, 물건은 쿠팡으로만 구매하며,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보내는 제가 이 정도로 영향을 받았다는 것은 직접적인 타격권에 있는 사람들의 생활에는 얼마나 큰 영향이 있었는지 상상도 하기 어렵습니다. 많은 전문가들이 더이상 COVID 이전의 생활로는 돌아갈 수 없다고는 하지만, 2021년 말에는 블로그에 여행 후기를 쓰면서 그래도 안전하게 사람을 만날 수 있는 정도로는 돌아갔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2020년은 제게 있어서 회사 운영을 어느정도 정리하고, 원래의 꿈인 대학원 진학으로 진로를 전환한 해입니다. 원래 회사 설립 당시부터 1년 정도만 대표를 맡아 하면서 제품화 단계까지만 관여를 하기로 약조가 되어 있기도 했고, 저 자신이 사업과 대표자라는 것에 대한 내적 정의가 끝나서, 제가 대표자의 자리에는 맞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에 회사는 어느 정도 정리를 했습니다. 사업을 완전히 접었느냐고 하면, 그것은 또 아닌데, 이런 이야기는 하기 시작하면 너무 길어지기 때문에 나중에 별도의 글로 다루어볼까 합니다.
어린 시절부터 대학원에 진학해 박사가 되는 것을 꿈꿔왔습니다만, 막상 대학원에 진학하려고 하니 두려웠습니다. 학부 시절 인턴 활동을 하면서 많은 박사 과정생들이 자신의 자질을 의심하며 괴로워하고, 중도 하차하는 것을 보아왔기 때문입니다. 5년은 어찌 보면 짧은 시간이지만, 소중한 시간이니까요. 무엇보다 제게 있어서 대학원 진학을 망설이게 하는 가장 큰 질문은 이것이었습니다.
연구가 재밌다 정도의 동기부여로 박사과정을 마칠 수 있을까? 해결하고자 하는 큰 질문이 있어야 하는게 아닐까?
저는 대학원 면담에 가서 교수님께 질문을 드렸고, 교수님은 “그런거 있는 사람이 약간 특이한거다. 원래 그 정도의 동기부여로 다들 대학원에 입학하고, 하다보면 그런 것은 찾아진다.”라는 대답을 주셨고, 그래서 대학원에 입학을 결정 했습니다. 어찌되었건 논문 읽고 연구하는게 즐거운 것은 사실이니까요.
1년이 지난 지금도 탐구할 궁극적인 질문은 고사하고 연구 주제를 스스로 찾는 방법조차 모르겠습니다. 한 8월 정도까지는 그 사실이 저를 굉장히 초조하게 했습니다. 하지만, 고민해 본 결과 그냥 제 경험이 아직 부족한 것으로 생각하고 2년 정도 더 열심히 논문을 읽고 연구를 해 보기로 했습니다.
궁극적인 질문을 찾지는 못했지만, 그렇다고 대학원에 와서 아무 것도 건진 것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2020년에 가장 크게 배운 것은 글쓰기의 소중함이 아닐까 합니다. 대학원에 입학할 때 아무도 제게 글쓰기가 연구의 중요한 부분이라고 가르쳐 주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제가 논문 작업을 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부분은 연구 이론이나 그 구현 보다는 논문 쓰기 바로 그 자체였습니다.
일주일동안 급하게 쓴 짧은 에세이 수준이긴 했지만, 정말 많은 부분이 비어있거나 어색했고, 많은 피드백을 받았습니다. 대학원을 다니면서, 기술 발표나 연구 노트, 리포트 등으로 글을 쓸 일이 정말 많았습니다. 그 글들을 어떻게 구성하고, 어떤 방식으로 서술해 나가야 하는지 일일이 교수님께 여쭈어 볼 수 없어서 난감했습니다. 저는 주로 해외 대학에서 설강되는 기술 발표하는 법이라던가, 논문 쓰는 법에 관한 논문을 읽으면서 가까스로 할 수 있었습니다. 이제는 제 설계 선택에 대해서 어느정도 타당한 이유를 들어 설명할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하는데, 저는 이것이 2020년에 대학원에 와서 가장 크게 배운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 제가 다니는 대학원에는 기술 발표나 논문을 쓰는 방법에 대한 강의가 따로 개설되어 있지 않은데, 전공과 관련없는 학부 수업의 연장선같은 수업을 진행할 바에는 논문 쓰는 법을 가르치는 과목을 몇 개 정도 개설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모든 수업이 재미있는 편이긴 하지만, 제 세부전공과 연관없이 졸업학점을 채우기위해 수업을 들으며 연구 활동에 지장이 가는 것이 불편할 때가 간혹 있습니다.
원래 매년 여름 시즌에 한번, 겨울 시즌에 한번 정도 이곳 저곳 여행을 가는 편인데, 2020년은 COVID 때문에 어디 여행을 가지도 못하고, 집에 박혀서 공부만 하면서 지낸 것 같습니다. COVID가 아니었다면, 교수님을 따라 PLDI에 따라가서 발표도 보고, 런던 구경도 하고 했을 텐데 참 안타깝습니다. 제가 이번에 모 학회에 논문을 준비 중인데 그 논문이 Accept 되어서 발표를 하러 가게 될 즈음에는 COVID가 좀 잠잠해지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첫 글이라고 너무 힘을 주어서 글을 적었네요. 2020년의 회고라고 했는데, 막상 2020년을 회고해보니 정말 집에 있었던 것과 연구를 했던 것 외에는 거의 기억에 남는 것이 없는 것을 보니 정말 2020년은 ‘잃어버린 20년’이라고 부를 만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오늘 보니 일일 COVID 감염자수가 300명대로 떨어졌더군요. 전문가들도 3차 대유행이 정점을 지났다고 조심스레 이야기하고 있는 것을 보니 참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무쪼록 2021년에는 추가적인 대유행없이 이 역병을 잘 넘어가는 해가 되었을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