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회고
2025년은 정리보다 진행이 앞섰던 한 해였습니다. 연구와 일, 그리고 개인적인 사건들이 동시에 겹치면서 무엇을 이뤘는지보다 무엇을 미뤄두고 지나왔는지가 더 또렷하게 남았습니다. 이 글은 성과를 정리하기 위한 기록이 아니라, 한 해를 통과하며 쌓인 생각들을 미뤄둔 집청소를 하듯 하나씩 꺼내놓는 회고입니다.
2025년은 정리보다 진행이 앞섰던 한 해였습니다. 연구와 일, 그리고 개인적인 사건들이 동시에 겹치면서 무엇을 이뤘는지보다 무엇을 미뤄두고 지나왔는지가 더 또렷하게 남았습니다. 이 글은 성과를 정리하기 위한 기록이 아니라, 한 해를 통과하며 쌓인 생각들을 미뤄둔 집청소를 하듯 하나씩 꺼내놓는 회고입니다.

2025년이 끝나고 2026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매해 돌아보는 글을 써야겠다고 마음먹지만, 실제로 끝까지 쓰게 되는 경우는 많지 않았습니다. 되짚어보고 고민하는 일은 언제나 아프고 힘든 일이기도 하고, 그보다는 앞에 놓인 일들을 하기에도 바쁘다고 스스로를 합리화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정리정돈이 되지 않은 채로 한 해 한 해를 살아오다 보니, 작년은 유난히 정신없는 한 해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미뤄둔 집청소를 하듯이, 보기 싫어서 밀어두었던 생각들을 한 번쯤은 꺼내놓아야 할 시점이 온 것 같았습니다. 2026년 새해에는 미루는 일 없이 살아보고자, 늦었지만 회고를 해 보았습니다.
박사학위 졸업을 언제 해야 하는지에 대해 여러 교수님들께 여쭈어본 적이 있습니다. 어떤 교수님은 “지도교수가 꼴뵈기 싫어질 때”라고 하셨고, 또 어떤 교수님은 “지도교수의 판단을 믿어라”라고도 하셨던 것 같습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스스로 하나의 완결된 연구를 수행할 역량이 되었을 때, 그때 한 명의 독립된 연구자로 졸업해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주제 선정부터 문제 정의, 해결 제안, 실험까지 모두 혼자 힘으로 감당할 수 있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지도교수님의 우산 아래에서 비교적 따뜻한 나날을 보낸 지도 어느덧 7년 차가 되어갑니다. 언어모델의 태동기라는 운이 좋은 시기에, 좋은 지도교수님과 흥미로운 분야, 함께 공부할 좋은 동기들을 만난 것은 분명 큰 행운이었습니다. 다만 지도교수님의 첫 제자이다 보니, 주제 선정이나 문제 해결 과정에서 많은 도움을 받았던 것도 사실입니다. 주제 또한 교수님께서 제시해 주신 것들 중에서 선택하는 경우가 많았고, 그로 인해 “나는 어떤 연구를 하고 싶은가”라는 질문에 대해 충분히 고민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연구자에게 있어 “어떤 연구를 하고 싶은가”라는 질문은 결국 “어떤 삶을 살고 싶은가”라는 질문과 맞닿아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오랫동안 이 질문에 대해 “재미있다고 느끼는 것을 하는 삶”이라고 답해 왔습니다. 다만 2020년쯤 창업했던 회사의 매각을 진행하면서, 제가 스스로 정의한 삶의 기준을 제대로 지키지 못했다고 느꼈고, 그 이후로 해당 질문은 열린 채로 방황해 왔습니다. 최근에 와서야 여러 경로를 돌아 다시 “재미있다고 느끼는 것을 하는 삶”으로 회귀하고 있는 중입니다. 무엇이 재미있는지에 대한 정의는 여전히 열려 있고, 아직은 그때그때의 감각에 의존하고 있지만, 이를 조금씩 구체화하는 것 또한 장기적인 과제로 남겨두고 있습니다.
연구자로서의 2025년을 되돌아보면 “애매모호함에 대한 대가를 치른 해”였다고 생각합니다. 연구자는 본질적으로 자영업자에 가깝지만, 그 사실을 쉽게 망각하게 됩니다. 학생의 태도를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면, 연구의 방향에 대한 책임이 나에게 있다는 감각도 흐려집니다. 방향타를 쥐고 있다는 인식이 부족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애매한 스탠스를 취하게 되었고, 원치 않는 방향으로 연구가 흘러가더라도 그저 함께 표류하게 되었습니다. 그 표류의 대가는 결국 연구의 주인인 제가 치렀다는 사실을 몸으로 배우는 한 해였습니다.
연구를 진행하면서 원인을 명확히 규정하지 않은 채 애매하게 넘어간 영역들에 대해서도 적지 않은 대가를 치렀습니다. 어떤 현상에 대해 “대체로 이런 이유일 것이다”라는 추측만 남겨둔 채 연구를 진행했다가, 이후 실제 원인이 밝혀지면서 연구 세팅을 처음부터 다시 해야 했던 적도 있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한 달 가까운 시간을 그대로 버려버린 경험도 있었습니다. 이러한 경험들을 통해, 연구를 함에 있어 저 자신의 스탠스와 연구 과정 모두에서 확실함을 가지고 임해야 한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엔지니어로서의 역할 역시 단순히 한 사람의 개발자를 넘어서는 방향으로 변하고 있음을 느낀 한 해였습니다. 추상적인 설계뿐만 아니라, 사업적 관점에서의 일정 산정과 기대 효과, 전체 사업 구조에서 기술이 차지하는 위치까지 설명할 수 있어야 했고, 이상적인 설계와 현실적인 타협점 사이를 연결하는 역할도 요구받았습니다.
조직적인 측면에서도 이전과는 다른 역할을 맡게 되었습니다. 저는 본래 혼자 일하는 스타일에 가깝고, 소통에도 능숙한 편은 아닙니다. 일을 명확히 분리하고 각자가 맡은 일을 하는 방식을 가장 편하게 느껴왔습니다. 하지만 이제 대부분의 일은 혼자 감당하기에는 규모가 커졌고, 제가 설계한 일을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고 관리하는 역량이 필요해졌습니다. “답답하면 내가 직접 한다”는 태도가 오히려 병목이 된다는 사실을 자주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서의 2025년을 돌아보면, 목표 설정에 특히 고생했던 한 해였던 것 같습니다. 그 이유는 크게 두 가지였습니다. 하나는 저 스스로를 과대평가한 점이고, 다른 하나는 사업적인 맥락을 충분히 이해하려 하지 않았던 점입니다. 높은 집중력으로 밤낮없이 몰입하면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일정을 현실적인 일정이라고 착각하고 제안했던 경우가 많았고, 실제로는 목표를 완전히 달성하지 못하거나 아슬아슬하게 맞추는 경우가 반복되었습니다. 막상 일을 시작하고 나서야, 그 목표가 얼마나 큰 산이었는지를 깨닫고 전의를 상실하는 일도 잦았습니다.
사업적인 맥락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점 역시 크게 작용했습니다. 제가 맡은 일이 사업 전체에서 얼마나 크리티컬한지 체감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었고,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사업을 운영하는 쪽과 긴밀하게 소통하며 시야를 맞추는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다만 회사가 물리적으로 멀어지면서 그러한 교감을 유지하는 것이 체력적으로 쉽지 않았던 것도 사실입니다. 이러한 경험을 통해, 추상적인 이상보다는 구체적인 산출물과 활용 방안을 기준으로 현실적인 목표를 설정하고 집중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2025년에는 누나의 결혼을 시작으로 아버지의 환갑, 어머니와의 여행, 저의 결혼, 아버지의 은퇴까지 가족과 관련된 굵직한 사건들이 연이어 발생했습니다. 이 과정을 통해 부모의 가족관과 저의 가족관이 꽤 다르다는 사실을 분명히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가족이 법적·사회적으로 구성될 수 있고, 상황에 따라 해체될 수도 있는 관계라고 생각합니다. 특별한 관계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예외적인 인간관계라고 보지는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본적인 예의와 거리 조절이 중요하다고 느끼는 편입니다. 반면 부모에게 가족은 해체될 수 없는, 매우 천부적인 관계라는 믿음이 있는 듯했습니다.
결혼을 통해 새로운 가정을 꾸리는 과정은 생각보다 훨씬 복잡했습니다. 기존의 가족과 새로 형성된 가족 사이에서 부드러운 소통을 만들어가는 일은 쉽지 않았습니다. 부모는 저에 대한 기여에 대한 보상 심리를 가지고 있고, 그에 비해 제가 아내에게 더 많은 보상을 하려는 것에는 반발하는 감정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그로 인해 제가 아내에게 방어적으로 행동하게 되는 순간들이 있었고, 그러한 태도를 아내는 그대로 느끼며 상처를 받았습니다. 중간에서 이를 조율하는 역할은 생각보다 훨씬 어려웠습니다. 또한 부모는 제가 가정을 이루었으니 이제는 어른으로서 행동하기를 요구했고, 원하지 않던 어른들의 행사들에도 하나하나 대응해야 하는 상황이 늘어났습니다.
10년 가까이 떨어져 살면서, 서로에 대해 잘 알지 못하게 되었다는 사실도 새삼스럽게 느끼게 되었습니다. 나이를 먹어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부모가 늙어서 그런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예전처럼 순수하게 믿고 의지하기에는 인간적인 부족함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다만 이는 부모가 갑자기 달라졌기보다는, 원래 그런 분들이었음을 제가 다시 인식하게 된 과정에 가까운 것 같기도 합니다. 부모, 형제, 그리고 그 배우자들과의 관계를 어떻게 재정립하고 대화를 이어갈지는 여전히 시간이 필요한 문제로 남아 있습니다. 감정적으로 완전히 의지할 수 있었던 부모가 더 이상 그 위치에 있지 않다는 사실은 개인적으로 꽤 불편한 감각으로 남아 있습니다.
돌아보면 2025년은 졸업과 결혼을 동시에 진행하며 전반적으로 체계적으로 살아가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많이 남는 해였습니다. 일들을 미루고 쌓아두며 감정을 소모하다 보니, “올해는 무엇을 이뤘다”라고 단정하기보다는 파편적으로 수행한 일들의 조각들만 떠오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문제들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감각을 얻게 된 한 해이기도 했습니다.
2026년은 1년이나 분기 단위의 중장기적인 방향을 염두에 두고, 하루하루를 조금 더 체계적으로 살아가고 싶습니다. 완전히 정해진 목적지는 없지만, 적어도 방향을 가진 채로 나아가는 한 해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이 회고를 마무리합니다.